다양한 영역에서 이미 매력적인 문화로 자리 잡은 한류 확산에 특히 잘파세대가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네이티브인 잘파세대는 가벼움을 표방하는 스니펫 컬쳐, 시추에이션십, 소셜임팩트와 진정성을 중시하는 특성이 있으며, 이는 콘텐츠, F&B(Food and Beverage), 소셜미디어 등에서의 소비에 반영된다. 미국을 포함해 한류가 글로벌에 진출할 때, 잘파세대의 독특한 특성들을 반영해 접근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한류 문화 확산이 가능하다.
1. 다양한 영역에서 매력적인 문화로 자리 잡은 한류
한류는 미국인들에게도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고 열광적인 매력을 가진 문화로 자리 잡았다. 2020년 BTS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마트 ‘타겟(Target)’에서 흘러나오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BTS 팬덤은 너무 잘 알려져 있고, BTS 멤버 정국 또한 2023년 겨울 싱글 앨범 발표와 함께 뉴욕 맨해튼에서 단독 게릴라 콘서트를 여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세계에 보여줬다. 또한 2023년 미국 슈퍼마켓 트레이더 조(Trader Joe’s)에서는 한국 구미에서 생산된 냉동김밥 열풍이 불면서 매진 사태가 일어났고, 뉴욕의 미슐랭 리스트에는 무려 10개가 넘는 한국 레스토랑이 소개됐다(Fortney & McCart, 2023. 11. 7). 미국에서도 한류로 잘 알려진 영상콘텐츠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큰 히트를 친 한국 콘텐츠가 되었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그 뒤를 잇는 한국 콘텐츠가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한국 영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ET Spotlight Special, 2022. 8. 21).
미국 식료품점 체인 트레이더 조에서 선보인 냉동김밥은 출시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전 매장에서 매진됐다. (사진출처: 트레이더 조)
1-1. 잘파세대가 한류에서도 중요한 이유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생으로, 그리고 교수로 지내면서 대형마트에서 한국 가수의 음악을 들은 것은 BTS가 처음이었다. 왜 이전에는 그런 경우가 없었을까? 이전에는 한류 문화의 퀄리티가 낮았던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세대의 변화, 특히 잘파세대(Zalpha Generation)와 관련이 크다고 본다. 잘파세대란 Z세대(1990년대 중반~2009년 출생)와 알파세대(2010년 이후 출생)를 뜻한다. 아직 생소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미국에서는 아마존, 우버, 쇼피파이 등 여러 글로벌 회사들이 이들을 겨냥한 상품과 서비스들을 선보였다. 아마존은 틴 로그인(teen login)이라는 서비스로 10대가 가장 많이 돈을 쓰는 곳이 됐고, 우버도 10대 전용 계정을 제공한다. 한국의 금융 앱 토스(toss)도 10대 전용카드를 출시한 지 2년 만에 약 190만 장이 발급되는 등 많은 회사가 이미 잘파세대를 겨냥하는 비즈니스, 상품,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잘파세대가 기업과 문화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이유는 우선 인구 수적으로도 3~5년 안에 가장 중요한 소비 주체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미국 Z세대는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알파세대는 4,5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한다. 전 세계에서 매주 2,800만 명의 알파세대가 세상의 빛을 보고 있고, 2025년에는 무려 22억 명에 달해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세대로 기록될 전망이다. 게다가 잘파세대는 나이에 비해 더 큰 소비잠재력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추고 있다. 우선 물리적인 나이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성숙한 업에이징(up-aging)세대다. 이들의 행동과 삶의 방식은 이전 세대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정보도, 맛집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방법도 영상 중심 매체인 틱톡에서 검색하고, 뉴스채널 대신 소셜미디어 뉴스를 더 신뢰한다. 어릴 때부터 로블록스 등의 게임에서 직접 게임을 개발해 수익을 내고, 유튜버 등 개인 콘텐츠 창작자로 활동하며 키드프리너(Kid+entrepreneur = Kidpreneur)라는 용어를 확산시켰다. 물론 한국을 비롯해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도 있지만, 오히려 줄어든 출산율로 인해 한 명의 아이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투자하는 자본이 커졌다. 이들은 스마트폰이 세상에 선보여진 2007년 이후 ‘디지털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네이티브이지만, 팬데믹을 겪으며 오프라인 역시 선호한다. 이러한 여러 특성을 가진 ‘잘파’는 ‘MZ’라는 세대 구분보다 세대 간 유사성이 훨씬 크고 기업에게도 좀 더 효율적이고 유의미한 세대 구분이 될 수 있다. 즉, 문화업계에서도 중요한 소비자일 수밖에 없다.
잘파세대는 영상 중심 매체인 틱톡에서 정보를 검색하고, 소셜미디어 뉴스를 더 신뢰한다.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개발하고, 개인 콘텐츠 창작자로 활동하며 키드프리너(Kidpreneur)라는 용어를 확산시켰다. (사진출처: 셔터스톡)
2. 잘파세대의 문화콘텐츠 소비 특성
2-1. 가벼움을 표방하는 스니펫 컬쳐
문화콘텐츠 소비에서는 이들의 특성이 어떻게 나타날까? 가장 큰 특징은 콘텐츠 전체를 긴 호흡으로 보는 대신 요약본 보기 등 짧은 호흡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2019년에 이미 넷플릭스 역시 콘텐츠 빨리 돌려보기 기능을 선보였고, 영화를 빨리 감아보는 트렌드 또한 이전 세대들에게도 확산됐다. 젊은 소비자들이 짧고 가벼운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은 비단 영상콘텐츠에만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소설계에까지 그 영향이 미쳤다. 한국에서는 1980~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엽편(葉篇)소설’이 부활한 것이다. 손바닥만 한 지면에 다 들어갈 정도로 분량이 적다고 하여 손바닥 소설로 불리기도 하는 엽편소설은 짧은 영상과 게시물에 익숙해져 분량이 긴 글을 읽지 못하는 요즘 독자의 입맛에 딱 맞는 형식이다. 숏폼에서 요리 레시피를 짧게 제공하는 것, 레스토랑에서 음식이 플레이팅이 되는 모습을 숏폼 영상으로 담는 것들은 모두 일종의 단편, ‘스냅숏’을 보여주며 관심을 끄는 것인데, 과거보다 이런 경향이 일반화되는 것도 젊은 세대의 콘텐츠 소비방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트레이더 조에서 냉동김밥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 계기도 틱톡 크리에이터가 냉동김밥을 숏폼으로 올리며 화제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Youn, 2023. 9. 7). 그만큼 잘파세대는 짧은 영상 중심으로, 특히 틱톡 플랫폼과 유튜브 쇼츠를 많이 보고, 이를 소비 결정에도 반영한다.
이렇게 콘텐츠를 간식처럼 가볍게, 더 빠르고 쉽게 소비하고자 하는 양상을 한국어로 스낵 컬처(snack culture), 영어로는 스니펫 컬처(snippet culture)라고 부른다. 사실 스마트폰 이전만 해도, 레거시 미디어와 장편소설 등 긴 호흡과 전통적인 채널은 여전히 유효한 문화 소통 루트였다. 하지만 디지털이 지배하면서 잘파세대의 주의력은 각각 20초(Z세대), 3초(알파세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짧고 가볍고, 즉각적인 메시지를 소통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길고 진지한 호흡보다는 ‘가벼움의 정서’를 반영하는 해시태그 #진지함보다는가벼움이라는 키워드는 타인과의 관계, 콘텐츠 소비, 정보습득, F&B 영역에서도 엿보이는 트렌드다(황지영, 2023).
타인과 관계 맺기를 할 경우에도 가벼움이 반영되고, 이러한 트렌드 역시 광고와 문화콘텐츠 요소로 등장한다. 요즘 세대의 관계 맺기 경향을 표현하는 시추에이션십(Situationship) 이라는 용어는 진지함과 책임(commitment)을 기반으로 한 관계 대신, 자신이 처한 상황(situation)에 따라 유연하게 가져가는 관계(relationship)를 말한다. #situationship 해시태그는 틱톡에서 30억 뷰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2023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사(the 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선정한 2023년도의 단어(2023 Word of the Year)의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Oxford, 2023). 캔디 브랜드 스윗하트(Sweethearts)는 2024년 밸렌타인데이를 기념해, 한정판 시츄에이션십 박스(Situation Boxes)를 선보였고(McCarthy, 2024. 1. 5), 이 광고 역시 틱톡에서 크게 회자됐다. 이런 광고들은 관계에 대해 좀 더 가볍고 포용적인 시각을 담은 것으로, 잘파세대가 바라보는 관계에 대한 시각을 반영한 콘텐츠다.
잘파세대의 관계 맺기 경향인 시추에이션십(Situationship)은 진지함과 책임을 기반으로 한 관계 대신,
자신이 처한 상황(situation)에 따라 유연하게 가져가는 관계(relationship)를 뜻한다. (사진출처: 셔터스톡)
2-2. 소셜임팩트가 한류 문화콘텐츠 소비에서 중요한 이유
BTS가 미국 10대를 중심으로 인기가 높았던 이유를 소셜임팩트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 최근 들어 더 강조되는 가치가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인데, 다양성과 평등, 포용을 의미하는 DEI는 지속 가능성과 함께 잘파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다. 알파세대는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이 가장 높은 세대인데, 이들은 이미 디지털문화 속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히고 다양성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화한 이들이다. 어릴 적부터 사회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알파세대의 특성이다. 한 예로 미국 10대가 다른 세대보다 흑인 인권 운동인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Z세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3가지 핵심 요소인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Z세대는 활발한 ‘소셜 액티비즘’1)을 보인다. 이전 세대보다 개인의 행동이 환경문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더 확고하게 믿는 세대이며, 이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행동으로 표현하는 클릭티비즘(Click-Tivism) 세대로도 평가된다. ‘클릭(click)’과 ‘행동주의(activism)’를 합한 ‘클릭티비즘’은 온라인 청원서명, 소셜미디어에서의 인식 제고를 위한 게시물 공유, 특정 해시태그 사용 등 인터넷에서 간단하고 신속하게 한 번의 클릭으로 사회적 또는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드러내는 온라인 행동주의의 한 형태다.
BTS는 2017년에 유니세프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라(Love Myself)’라는 캠페인을, 2018년 한국 문화그룹으로는 처음으로 UN에서 연설하며 인종, 성, 출신지 등에 상관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Voice Yours)’는 메시지를, 그리고 2021년에는 한국 미래세대와 문화사절 대표로 UN에서 희망과 기후 위기에 대한 액션, 그리고 백신에 관한 메시지를 냈다(Nakamura, 2021. 9. 22). 이러한 활동은 BTS가 노래 잘하는 가수뿐 아니라 사회적 이슈와 평등에도 참여하는 진정성을 느끼게 했고, 이 또한 잘파세대에게 더욱 가치 있는 문화인으로 인식되며 팬덤을 강화시켰다.
1) 타인과 협력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선택과 행동
2-3. 진정성 또한 잘파의 니즈
잘파세대는 진정성에 대한 니즈 또한 크다. 이는 안티소셜미디어 움직임의 확산과도 관계가 있다. 디지털에 집중될수록 반대급부로 디지털 환경에서 나를 추적할 수 있는 알고리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소셜미디어에서 맺는 피상적이고 부정적인, 그리고 심한 경우 익명성에 기반한 가학적 소통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 늘었다. 즉, 좀 더 진정성 있는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고, 진정성에 대한 요구가 커진 것이다. 더 광범위한 시각에서 보면 소셜미디어의 의미가 재정의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알고리즘과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에 반(反)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최상의 모습만 노출하고 싶은 욕망을 표현하는 채널의 역할이 주가 됐던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
소셜미디어가 재정의되며 비리얼(BeReal)2) 이나 테이프리얼(TapeReal)처럼 진정성을 서비스의 핵심으로 삼은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향은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에 자주 노출되는 Z세대 중에서도 특히 15~30세 여성이 진정성과 안티 알고리즘을 강조하는 소셜미디어에 더 크게 공감하며, 이러한 방향으로 이동 중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알파세대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는 유튜브와 틱톡, 페이스북을 가장 많이 이용하지만, 알파세대가 게임미디어 트위치보다 비리얼을 더 많이 사용하고 비리얼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향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만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2) 2019년 프랑스에서 론칭된 소셜미디어이다. 언제나 포스팅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가 아닌, 하루에 한 번 알람이 올 때만 2분 안에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올리게 만든 서비스로, 소통에서의 진정성을 강조한다.
“있는 그대로” 일상을 공유하는 진정성 콘셉트의 소셜미디어 ‘비리얼(BeReal)’ (사진출처: 셔터스톡)
3. 한류 문화 확산을 위한 제언
미국에서 한류 문화를 더욱 확장하는 데에는 잘파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콘텐츠 소비 맥락에서 스니펫 컬처를 고려해 콘텐츠에 집중한 서비스에는 잘파세대의 신뢰를 높이는 한편, 콘텐츠 쪼개기와 요약본 제공하기 등을 접목해야 한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접하지만, 스냅챗과 틱톡이 전통적 뉴스채널을 대체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향후 비즈니스에 어떻게 작용할지 생각해야 한다. 잘파세대가 주요 소비자가 되는 몇 년 안에 1) 콘텐츠를 작은 단위로 쪼개기(쇼츠와 릴스), 2) 디지털과 오프라인을 다발적으로 이용하는 온·오프라인 동시 이벤트, 3) 긴 뉴스요약본 제공하기 등의 다각도 전략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 한국의 F&B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미국에서 특히 잘파세대를 포함한 젊은 세대에게는 음식의 맛도 중요하지만, 음식이 어떻게 나오는지가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맛은 이미 검증된 브랜드로 가볍고 간편한 메뉴, 사진으로 공유하고 싶은 시각적 요소가 잘 결합된다면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셋째,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한류 문화에 대한 과시용 콘텐츠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 진정성을 강조한 콘텐츠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비리얼처럼 진정성을 강조한 광고/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이다.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써브웨이의 시스템을 멕시칸 음식에 적용한 치폴레는 2022년 4월 업계에서 가장 먼저 비리얼과 협업했는데, 비리얼 앱 내에 ‘진실·현실을 위해서(FORREAL)’라는 프로모션 코드를 포스팅하며, 치폴레 앱에서 이 코드를 사용하는 선착순 100명에게 주문메뉴를 무료로 제공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치폴레에 따르면, 이 간단한 포스팅 후 30분 안에 프로모션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비리얼에서의 팔로워 수도 늘었다고 한다. 한국 기업들도 이러한 접근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진정성이란 할리우드를 따라 하는 대신 한류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한류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진정성을 강조한 콘텐츠 등 잘파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진출처: 셔터스톡)